난 말 잘 듣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나는 말 잘 듣는 아이였다. 어느 순간엔가 나는 권위에 대항하는 데 드는 단기적이거나 장기적인 비용이 하기 싫은 일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을 초과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때부터 나의 전략은 권위에 각을 세우지 않는 것이었다. 나의 비용 평가에서, 귀찮은 것은 비싸다. 그렇지만 늘 권위에 대항하는 정신을 가진 아이들을 존경했다. 저들에게는 그 모든 비용을 치르는 것이 합당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편애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저 말 잘 듣고 권위에 복종하는 다루기 쉬운 아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오해에는 불편한 점이 둘 있다. 첫째는 내가 받는 인정과 편애가 결코 옳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그 상황을 이용하고 즐길 수도 있었지만 마음이 안 좋았다. 옳지 않은 이득을 얻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옳지 못한 이득에 알러지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잘못 거슬러 받은 돈도 잘 갖는다.)
둘째는 불가피하게 내가 앞으로도 계속 말을 잘 들을 거라는 오해를 받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보다 실질적인 피해로 작용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랬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는 보장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게 가치 없는 일에는 굳이 대항할 필요가 없지만, 나도 필요하면 물의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변질이며 오염이라고 여긴다.
얘기는 언제나처럼 여기서 갑자기 끝난다.
- 어릴 적, 나는 귀찮아서 권위에 대항하지 않는 전략을 발명했을 뿐인데, 권위에 대항하는 훌륭한 정신을 가진 아이들에 비해 인정받고 편애받던 상황이 참 어이가 없었다. 가치 없는 일에는 대항하지 않겠지만, 나도 필요하면 물의를 일으킬 수 있었다. 오전 8시 6분
- 사람은 물과 과일만으론 살 수 없는 걸까? 밥 먹기 귀찮다. 오전 8시 18분
- 그녀는 오징어, 낙지, 쭈꾸미를 먹지 못한다. 나는 그것들을 먹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다소의 불쾌감을 참고 먹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그녀에게 배웠다. 우리는 이렇게 닮아간다. 오전 8시 20분
- 글을 잘 쓰고 싶다. 오후 6시 2분
- 버그 없는 세상이 있다면 거기엔 내가 없을 것이다. (좌절 섞인 비명) 오후 10시 14분
이 글은 heycalmdown님의 미투데이 2007년 6월 20일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