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난 커피가 무슨 맛인지 잘 모르지만, 가끔 입이 심심할 때 한 잔씩 마시는 걸 마다하진 않았어. 캔 커피가 특히 마시기 좋더라. 양이 너무 적지만. 식사까지는 좀 그렇고, 간단한 약속이 있으면 커피 한 잔 놓고 수다 떠는 정도로, 둘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 사이에 술잔 대신 놓일 수 있는 음료 잔이랄까, 내게 커피란 그 정도의 의미였지.
내 위장은 그리 튼튼하진 않은 것 같아서 긴장을 하거나 또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배가 살살 아파져서 화장실에 갔다가 그냥 별 일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고 돌아오는 일이 종종 있었어. 그러다 어느 날 알았지. 배가 아플 때마다 난 커피를 마시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커피를 끊었어.
"아아, 전 커피 못 마셔요."
카페에는 참 많은 종류의 음료가 있지만 커피가 들어있지 않은 건 거의 없더라. 전에는 그 많은 커피 음료 중에서 뭘 고르면 좋을지 몰랐는데 커피를 끊은 후에는 그 외에 뭐가 남는지 골라내기가 어려워졌어. 몇 종류의 차를 시험해 봤지만, 뜨거운 건 별로 좋아하지 않고.
출처: 고양이 메롱 | ζove … Αnd … Τime
사진 바꿉니다(예전 사진, 출처)
아무튼 몇 년 전의 이야기. 최근엔 딱히 커피를 마셔야 할 모임 같은 것도 없고. 신경 쓸 때 배가 아파지는 것은 여전하지만 이유 없이 배가 아파지는 일은 거의 없어졌어. 역시 범인은 커피였던 거지. 그러다 보니, 나는 교만해졌어. 혹시 병이 다 나은 건 아닌가? 애초부터 없었던 건 아닐까? 세상에 커피 음료가 얼마나 많은데 아무 것도 마실 수 없다는 건 너무 억울하잖아? 그래서, 가끔 커피를 마시게 되었어. 한 모금, 두 모금, 몇 달만에 한 잔, 한 달에 한 잔... 그리고 이제 당당하게 커피를 시키게 되었다?
지하철 홍대입구역 앞에 한 잔에 이천 원 하는 커피 가게가 있는데, 노트북도 쓸 수 있고(부족전쟁도 확인할 수 있고), 이건 마시지 않는 게 너무 손해인 거야. 이 커피는 '오늘의 음료'이기때문에 커피가 아닌 다른 음료는 제값을 받는다구. 그러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래서 마셨어. 멀쩡하더라! 그래, 사실 커피가 아니라 첨가된 뭔가 다른 재료를 마실 수 없는 거였는지도 몰라. 이제 나도 카푸치노나 아메리카노 정도는 마실 수 있지!
7월 6일 일요일, 어제는 방통대 기말고사가 있어서 시험을 보러 갔다가 중간에 세 시간 정도가 비어서 할리스에 갔어. 거기서 뭘 시켰게? 응,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랑데 사이즈요. 그리고, 마셨다? 참고로 두 과목 더 시험이 남아 있었어. 좀 시원한 데서 쉬면서 공부를 할 요량이었는데, 그래서, 세 시간을 버텨야 하니까, 큰 컵으로 홀짝홀짝 마시면서.. 세 모금인가 네 모금을 마셨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벌벌 떨리는 거야. 손도 떨리고, 진정이 안 돼. 어라, 내가 시험을 너무 못 봐서 그런가, 남은 과목이 어려워서 그런가, 홀짝 홀짝. 그러다가 배가 아파오니까, 아, 이거 비싼 돈 주고 샀다고 내가 날 기만하고 있을 때가 아니구나, 반이 넘는 커피는 다 버리고, 그래서.
갑작스럽지만 결론. 싼 커피만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