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마루의 위키 기반 웹 노트, 스프링노트가 어제 일자로 개편을 완료했다. 사실 개편에 대한 건 아니고, 이 참에 다뤄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글 쓰는 도구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또는 생각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들을 수 있는 가장 기쁜, 궁극적인 소리는 아마도 '글을 쓰게 하는 도구'로 불리는 것 아닐까. '글자를 찍어 남길 수 있는 것'으로 불리는 대신 말이다.
최근에 내가 그렇게 부른 것은 --- 미투데이에 몇 번 쓴 일이 있는데 --- q10이라는 응용이었다. q10은 화면 전체를 검게 가득 채우고 글을 쓰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하는, 이를테면 독재자나 다름없다.
q10을 띄우면 눈에 보이는, 마우스로 콕 찍을 수 있는 메뉴도 없고, 그래서 단축키를 모르면 나갈 수도 없다. 그야말로 감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진해서라도 들어가고 싶은 감옥이다. 어떤 게으름뱅이가 글을 쓸 때는 종종 감옥이 필요했다. 방금도 들어간다고 표현했는데, 돌이켜보니, q10에 들어간다거나 나온다거나 하는 말을 몇 번 더 썼더라. 들어가고 나오다니, 어디 요즘과 같은 멀티 태스킹 시대에 가당키나 한 소린가?
rein님의 최근 일과 놀이 사이라는 글에서 소개돼 무척 공감한 그림이 하나 있다.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니다. (편지 내용이 궁금하면 도메인을 빼고 읽으세요.) 요즘 우리들에게는 뭔가에 집중한다는 일이 예전처럼 쉽지 않다. 할 수만 있다면 빌어먹을 MS와 윈도우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싶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죄가 없다. 있나?)
요전에는 하도 기특하여, q10이 어디 하늘에서 툭 튀어 나왔나 보았더니, q10과 비슷한 Dark Room이란 놈이 아니나 다를까 발견되었다. Dark Room은 Write Room의 카피라고 하는데, OS X 버전이다. 리눅스 버전을 찾는 사람을 위해 대신 찾아 보았는데, Pyroom이라는 게 있다. 여기서 끝날까? 아니다. 자매품으로 DarkCopy(어디서 나온 이름인지 알겠다. -.-), JDarkRoom(자바로 만든 Dark Room 카피?), MS 워드로 Write Room 흉내내기, WestEdit가 있다. 정 안 되면, 리눅스 런레벨 3 이하에서(그림이 하나도 없는 까만 콘솔 화면을 말한다) Vim 같은 콘솔 에디터를 쓰라고도 한다. 어차피 똑같다고. 그러고 보니 그렇다. 멀리 돌아왔지만 아무래도 원본은 Write Room인 것 같으니 이들을 Write Room류라고 불러야겠다.
스프링노트 개편으로부터 이런 얘기까지 하게 된 계기가 있다. 그제, 오픈마루에서 일하는 멋진 개발자 나이누옹이 말씀하시길, 스프링노트 새로운 버전을 만지작 거리다가 갑자기 글이 쓰고 싶은 충동이 들어 글을 하나 썼다 한다. 그 사실을 모른채 인상깊게 읽었던 액티브 서포트 - b 어쩌구 하는 글이 바로 그것이다. 뭘 알고 인상이 깊었던 것은 아니나 아무튼 그랬으니.
옛날부터 어른들이 말하듯이 도구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고,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 법이지만, 옛날이라고 붓의 로망이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 글은 나이누옹과의 대화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 씌였으며,
이 글은 미투데이에 남긴 로그를 기반으로 거저 먹었으며,
이 글은 스프링노트로 작성되지는 않았음.
땅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