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바람이 차졌다

아침 바람이 차가워지면, 일 년에 한 번, 그를 생각한다.

12월 중순이었다. 당연히 바람이 찼지. 지난 번 익산에 들렀을 때는 조만간 다시 연락을 드려야겠다고, 의사가 말했다. 평생을 수도권에서 부대끼며 살았더니, 아니, 마음 안의 이유인지 마음 밖의 이유인지 이제는 모르지만, 참 사람 사는 곳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화장실에 손 씻는 법이 그려 붙여 있어서, 화장실에 들를 때마다 비누칠 해서 손을 깨끗이 씻었다. 그는 이제 다른 사람에게 의사를 전달할 수 없었는데,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작은 어머니였다. 하나님을 영접했다고 전해 들었다. 배신감을 좀 느꼈다. 나는 아직도 그게 사실이 아니거나, 본심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니다. 나도 그랬으니까.

전화가 왔다. 오늘이 마지막일 거라고. 정상적으로 퇴근하고, 익숙해져버렸다는 게 오히려 낯선 고속 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직장 동료들 중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겨울이라 금방 어두워졌고, 곧 눈발이 날렸다. 기분이 묘했다. 살짝 잠들랑 말랑하는 와중에 젊은 여자 의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피로에 찌든 목소리로 얼른 오셔야겠다고 재촉한다. 그렇다고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대충 알겠다고 전화를 끊고, 이동 중에 전화로만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렇게 되진 않았다.

도착하니 밤이 늦었다. 의사가 때가 되면 부를테니 쉬라면서, 방으로 안내했다. 중환자실에 식구를 눕혀둔 사람들이 쉬거나 자는 방이었는데, 내가 있던 병원에는 그런 게 없었다. 대충 자리를 잡고 누웠다. 좀 찜질방 같았다.

그는 이른 새벽에 죽었다. 심장이 멈추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티비에서는 마지막 말도 잘 하던데 그런 가슴 뭉클한, 적어도 인간적인 사건은 아무 것도 없었다. 기계를 통해 숨을 쉬는 그를 보고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어서, 기계의 그래프만 들여다보다가, 아, 가셨구나 하고, 그 순간 의사가 뭐라고 몇 마디를 하고, 아, 그렇구나, 그렇게 알았다. 사람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작별을 하니까,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경우가 더 드물 거라고 생각한다. 역시 티비가 문제다.

어느새 날이 밝았더라. 눈도 그쳤고. 누구에게든 전화를 해야겠는데, 보니 배터리가 다 됐다. 편의점에 충전을 맡기고 컵라면을 먹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배는 고프단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배터리가 충전되는 동안 밖에 나가서 잠시 산책을 했다. 눈이 그치고 해가 잠시 쨍쨍 내려쬐는 겨울 아침은 참 아름다운 법이다. 편의점에서 배터리를 다시 돌려받아 전화기에 끼웠다. 전원이 안 들어왔다. 보니까 너무 오래 충전을 했는지 전압이 안 맞았는지, 배터리 엉덩이쯤이 그을고 부풀어 올라 있었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공중 전화를 찾아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저녁때 직장 동료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멀리까지 와줬다. 고마웠다. 음, 사람들 중에, 특히 팀장님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남긴 것이 없었다. 말 한 마디도 없었고, 편지 한 통도 없었다. 메모도 없더라. 갑작스러웠으니까 그랬으리라 생각하지만, 아쉽다. 나중에 들으니 동생과는 메일로 왕래가 있었다고 한다. 그랬으리라 생각했지만, 생각 못 했다.

나는 기록을 많이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많이 많이.

얼마 없는 짐을 뒤져보니,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찍은 사진들이 몇 장 나왔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도 발견했다. 그가 지난 몇 년을 고통 속에서 산 것만은 아니었다는 걸 깨닫고, 화장실에 가서, 그날 처음으로 울었다. 잠시 잠깐.

by 어이 | 2008/10/16 02:27 | 헤이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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