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 페인트공 헤이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에 쓰던 노트... 겨우 며칠 쓰고 말았던 그 노트를 열어볼까 하는 금단의 생각마저 들었다. 그걸 꾸준히 썼어야 하는데. 내가 뭐라고 불렀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만의 시간이 있어야 글을 쓰지, 뭐람. 그걸 쓸 때는 눈마저 감고, 내가 뭘 쓰고 있는지 떠올리지도 않았다. 한참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한 페이지도 되지 않았을 때는, 나 자신에 실망이 들기도 했다. 내가 뭐라고. 그래, 아니, 하지만 나는 자동 기술이니,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글쓰기니, 글이 저절로 써진다고 해도 전혀 반기지 않을 것이다. 머리를 짜매며, 적절한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끙끙대며,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 자연스럽게 나온 문장처럼 꾸며낸 것을 손 끝에서 이리 저리 돌리며, 마침표를 찍는 것이 무언가 아쉬운 듯 끝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쉼표를 찍으면서, 어렵게 어렵게 이어가는 게 좋았다. 그렇게 몇 줄을, 지나온 문장을 다시 한 번 검토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어렵게 써나가다가, 아아, 지쳤어, 이대로 이 이상은 더 쓸 수 없는 거야, 하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 다음, 시선을 지금 쓰고 있는 이 문장, 커서가 깜빡이는 바로 여기로부터 저 위로 옮긴 다음, (지금 또 다녀왔다)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들을 다듬으며 내려와서 몇 글자를 더 쳐넣고, 몇 단어 더 더했으니 줄거리가 여전히 그에 맞는지 다시 한 번 검토해야지 했다. 줄이 늘어날수록 새 줄이 더해지는 간격이 길어졌다. 다듬고 다듬고 다듬고, 글쓰기란, 글이 다 닳아 없어지는 게 먼저인가, 글이 끝나는 것이 먼저인가, 그것의 문제인 것이다. 글쓰기란 원래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그렇담 이것은 글쓰기의 기쁨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에 대한 기쁨이 아닌가? 독자에게 전할 말이 있어서 쓰는 사람은 그를 위해 고통을 참아내고, 독자에게 전달할 이야기가 있어 쓰는 사람은 그를 위해 고통을 참아내고, 나는 고통이 끝나는 것이 달가워 고통을 반기는가? 한심하게도 중독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영화 시작 시간이 아직도 한참 남아서 이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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