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저, 저기요! B: 네? A: 저.. B: ?? A: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B: 네?? A: 나이가... B: 스물 셋인데요. A: 아 예 그럼 이제 졸업반이시겠네요. B: 아니오 재수해서.. 그런데 왜요. A: 아니 저 할 말이 없어서. B: 뭐라구요? A: 불러는 놨는데 할 말이 없어서요. 누구 닮은 사람인 줄 알고. 죄송해요. 가셔도 돼요. B: ... A: ... A: 저기요. B: 네? A: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누군지 생각은 안 나는데, 아 누구지? 확실히 누구 맞는데, 기억은 안 나고, 어쨌든 지금이 아니면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아! 근데, 누구지, 에라 모르겠다. B: 그러니까 내가, 에라 모르겠다? A: 예, 그래요. 일단. 그러고 나니 생각이 안 나세요. B: 하하. 혹시 연기하시는 분이세요? A: 네? B: 사람을 앞에 두고, 뭐, 그런거요. 독백, 모놀로그- 랄까? A: 그랬나요? B: (뒤적뒤적..) A: ? B: (명함을 준다) 연락주세요. A: 저 연기 안 해요. B: ?? A: 연예 사무실? B: 졸업반이냠서요. 무슨, 흥, (코웃음 친다. 기분이 나쁘진 않지만) 기억 나면 연락 주세요. 누군지. A: 이거 작업 거시는 건가요? B: 아하! 무슨, 됐어요, 도로 줘요 그럼. A: 아, 아니,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나한테 먼저 말 걸어놓고 연락처도 안 물어? 괘씸한데? 이런 남잔 처음이야. 흥, 벼, 별로 좋아서 연락처 주는 건 아냐. 궁금해서 그런 것뿐이라구. B: 하! 웃기고 있어 진짜. A: 연락 드리죠. B: 예, 그럼. A: 잘 들어가세요.
12월 중순이었다. 당연히 바람이 찼지. 지난 번 익산에 들렀을 때는 조만간 다시 연락을 드려야겠다고, 의사가 말했다. 평생을 수도권에서 부대끼며 살았더니, 아니, 마음 안의 이유인지 마음 밖의 이유인지 이제는 모르지만, 참 사람 사는 곳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화장실에 손 씻는 법이 그려 붙여 있어서, 화장실에 들를 때마다 비누칠 해서 손을 깨끗이 씻었다. 그는 이제 다른 사람에게 의사를 전달할 수 없었는데,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작은 어머니였다. 하나님을 영접했다고 전해 들었다. 배신감을 좀 느꼈다. 나는 아직도 그게 사실이 아니거나, 본심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니다. 나도 그랬으니까.
전화가 왔다. 오늘이 마지막일 거라고. 정상적으로 퇴근하고, 익숙해져버렸다는 게 오히려 낯선 고속 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직장 동료들 중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겨울이라 금방 어두워졌고, 곧 눈발이 날렸다. 기분이 묘했다. 살짝 잠들랑 말랑하는 와중에 젊은 여자 의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피로에 찌든 목소리로 얼른 오셔야겠다고 재촉한다. 그렇다고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대충 알겠다고 전화를 끊고, 이동 중에 전화로만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렇게 되진 않았다.
도착하니 밤이 늦었다. 의사가 때가 되면 부를테니 쉬라면서, 방으로 안내했다. 중환자실에 식구를 눕혀둔 사람들이 쉬거나 자는 방이었는데, 내가 있던 병원에는 그런 게 없었다. 대충 자리를 잡고 누웠다. 좀 찜질방 같았다.
그는 이른 새벽에 죽었다. 심장이 멈추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티비에서는 마지막 말도 잘 하던데 그런 가슴 뭉클한, 적어도 인간적인 사건은 아무 것도 없었다. 기계를 통해 숨을 쉬는 그를 보고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어서, 기계의 그래프만 들여다보다가, 아, 가셨구나 하고, 그 순간 의사가 뭐라고 몇 마디를 하고, 아, 그렇구나, 그렇게 알았다. 사람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작별을 하니까,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경우가 더 드물 거라고 생각한다. 역시 티비가 문제다.
어느새 날이 밝았더라. 눈도 그쳤고. 누구에게든 전화를 해야겠는데, 보니 배터리가 다 됐다. 편의점에 충전을 맡기고 컵라면을 먹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배는 고프단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배터리가 충전되는 동안 밖에 나가서 잠시 산책을 했다. 눈이 그치고 해가 잠시 쨍쨍 내려쬐는 겨울 아침은 참 아름다운 법이다. 편의점에서 배터리를 다시 돌려받아 전화기에 끼웠다. 전원이 안 들어왔다. 보니까 너무 오래 충전을 했는지 전압이 안 맞았는지, 배터리 엉덩이쯤이 그을고 부풀어 올라 있었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공중 전화를 찾아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저녁때 직장 동료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멀리까지 와줬다. 고마웠다. 음, 사람들 중에, 특히 팀장님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남긴 것이 없었다. 말 한 마디도 없었고, 편지 한 통도 없었다. 메모도 없더라. 갑작스러웠으니까 그랬으리라 생각하지만, 아쉽다. 나중에 들으니 동생과는 메일로 왕래가 있었다고 한다. 그랬으리라 생각했지만, 생각 못 했다.
나는 기록을 많이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많이 많이.
얼마 없는 짐을 뒤져보니,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찍은 사진들이 몇 장 나왔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도 발견했다. 그가 지난 몇 년을 고통 속에서 산 것만은 아니었다는 걸 깨닫고, 화장실에 가서, 그날 처음으로 울었다. 잠시 잠깐.
나는 어느 날인가 잠에서 깨어 보니, 나 자신이 이미 추리 중독이었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뭐 그런 란포적인 현실 위에 놓여져 있었다. 처음은 남들과 마찬가지로 애거서 크리스티, 셜록 홈즈, 괴도 뤼팽 등으로 시작했지만, 거기서 더 발전하지는 못하고 다른 경로로 추리 중독을 해소하고 있었고 --- 게다가 그걸 인지하지도 못했다는 --- 그런 상황이랄까. 근처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추리물을 읽고 보고 듣고 난 후에 금단 현상이 일어나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다.
만화, 영화, 드라마를 게걸스럽게 읽어내고 이제 도박물, 형사물, 범죄물, 사기물, 어딘가 추리 냄새가 좀 묻었다 하는 온갖 장르물을 해치우고 나니, 이제 드디어 본격 소설 읽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그러나 나는 시작을 못 하고 있었다. 내가 김용 이후로 무협 소설을 읽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랄 수 있는데, 도무지 그보다 나은 작품이 있을 수 있겠냐는, 물론 좋은 책들이 많겠지만, 실패 없는 소심한 삶을 살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시행착오라는 말뜻을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 여기가 딜레마가 발생하는 지점인데, 하나 --- 첫 시작이 성공일 경우 다음 실패가 더욱 두려워질 것이고, 둘 --- 실패일 경우 다시는 더 도전하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두려움.
아무튼 그러고 있는 사이, 우연찮게도 렛츠리뷰 위젯을 달게 됐고, 기이하게 그 회차에 추리 소설이 몇 개씩이나 리스트에 있는 게 아니겠는가. 이 또한 란포적인 우연이라 할 수 있겠는데, 재밌는 게 지난 주까지만 해도 오스터적인 우연이라 썼을테다.
아마 그 회차는 전부 떨어지고 다음 회차에 이글루스 렛츠리뷰에 처음으로 당첨이 되어서 책이 왔다. 지난 회차엔 훨씬 재밌어 보이는 책이 많았는데, 이번엔 단편집인데다 시리즈 중 마지막 한 권인지라, 사실은 당첨 소식을 듣고서도 좀 실망했었다. 그런데 받아보니 600페이지 남짓하고 손에 들리는 느낌이, 오, 실하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다 할지 모르겠지만 이게 책이 한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 너무 좋다. 책 내용도 중요하지만 나는 표지도 중요하고, 들고 오고 가며 읽을 때 들리는 느낌도 중요하고, 쪽 넘김, 책 냄새도 중요하다. 어느 하나 딱 '이게 좋다' 할 기준은 없지만 그렇게 여러 가지가 딱 맞는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두껍고 가벼운 조합이 이렇게나 좋구나.
뒤늦게 받아들고 보니 1, 2권은 본격추리고 3권은 기괴환상이라 한다. 나는 본격추리인 쪽이 좋았을 걸. 아마 나처럼 추리 소설을 읽겠다 싶은 사람이라면 1, 2권을 사든지 아니면 전 권을 사는 게 좋겠다. 세 권이 모두 책꽂이에 꽂혀 있으면 아마 기분이 무척 좋아질 것 같다.
책이 두꺼운 데도 불구하고 요즘 나오는 책 치고는 양장이 아니며, 책줄이 없고, 짤막한 단편 위주로 되어 있으므로,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옛 버릇이 돌아왔다. 기억하기 좋은 쪽수에서 아무리 재밌는 장면이라도 책을 그냥 덮거나, 무리하여 좀 더 읽는 거다. 예를 들면 5나 10으로 떨어지는 페이지까지 읽기. 또는 2의 n승수나 123, 234처럼 이어지는 수, 아니면 모두 같은 숫자로 이루어진 페이지까지 읽고 덮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읽다 보면 책갈피가 없어도 책을 읽을 수 있다. 나만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주변에 자랑 삼아 말해 보았더니, 보통은 '괴기'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 단편집의 테마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괴기는 아니다. 기괴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쓰이지 않는 단어는 아니되 대중에서 흔히 쓰이는 것도 아니어서, 다소 일본적인 냄새가 난다. 일본 소설이니까, 그래서 뭐 어떻다는 것은 아니지만, 예비 독자들의 이해를 돕자면, 기이하거나 괴상하거나 환상적인, 꿈같거나 악몽같고, 끔찍하며 때로는 요상망칙한.
탐정취미가 --- 즉, 추리소설가로써 몇 편이고 썼을만한 소품 성격의 글이 대부분인데, 그중에서도 소재나 주제, 트릭, 아이디어, 흐름, 문체 뭔가 특별한 것이 하나씩 있는 단편들이 실린 모양이다. 그리고 몇편의 완성도 높은 작품도 있다. 사실 여기에 무서운 이야기는 결코 없다. 그러나 가장 인상깊었던 고구마벌레라는 작품을 떠올리면,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정말 끔찍하다. 그러니까, 꼭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하자면, 에도가와 란포의 기이한 이야기들, 정도가 알맞지 않을까 싶다.
음악이라곤 몇 년째 안 들었다. 심지어 컴퓨터에 사운드 세팅도 안 해놓고 살기 일쑤. 내게 추천하는 음악을 날려주었던 고마운 이들은 내게서 나중에 듣겠다는 대답만 들었던 걸 기억할 것이다.
요전에 아이팟 터치 8G를 경품으로 얻었다. 해킹해서 프로그램을 몇 개 깔아보고 놀다가 질려서, 그래, 이참에 오랜만에 음악을 들어볼까하고 처음 찾아본 것이 빅뱅이었다. 유튜브에서 빅뱅아가들의 뮤비를 다량 입수하고 보고 듣고 잘 놀았다. 그 중의 한 곡이 '나만 바라봐'였다. 노래는 좋은데 가사를 좀 보면,
가끔 연락 안 해도 미워하지마
대충 이런 뉘앙스가 있는데, '연락 안 해서' 미운 게 아니라 보통은 '연락 안 되어서' 미운 거겠지. 이래서 가사 알아듣는 노랜 불편하다. 위듀나 들읍시다.
블로거(?) 우석훈 박사의 신작으로, 신간 소식을 들은 건 좀 됐는데 알라딘에 뜨질 않아서 매일같이 검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매일같이 검색하는 다른 책들로는 - 플루토, 크로스 게임이 있음.) '88만원 세대' -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 '촌놈들의 제국주의' - '괴물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4편.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2편인 아무도 모르는 -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의 개정판. 조직 이론에 대한 얘기다.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1편. 88만원 세대라는 유행어를 만들었던, 유명한 책.
왠지 모르게 장바구니에 들어 있었다. 드물게 충동구매 했는데, 사놓고 보니 표지가 후지다. 이걸 왜 샀나 했더니 우석훈님 블로그 댓글에서 읽고 우석훈님 책인줄 알았던 것 같다. 이미 배송했다는 문자가 왔네..
작년 여름인가? 홍대입구역 근처 나무그늘이라는 북 카페에서 여섯 시간 정도 노닥거린 적이 있는데, 세 권을 읽어내고 마지막으로 집어든 책이 이거였다. 중간에 나오게 되어서 언젠가 꼭 다시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장바구니에는 매달 들어가지만 월 책 예산인 오만 원이 자꾸 넘치는 바람에 도로 나오기 일쑤였는데, 드디어 구매에 성공했다.
요즘 너무 추리가 고프다. 만화, 드라마는 다 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책에는 손이 잘 안 가더라. 어릴 때 대가들의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그런지 일제 추리 소설(웃음)은 우습게만 보이고, 미야베 미유키는, 글쎄 아까워서, 마지막 보루로 안 읽고 있다. 몇 달 째 고민하다가, 모처럼 월 책 예산이 안 차서, 채워넣기로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전집 중 한 권을 구매. 계속 사면, 파산이다.
문제가 뭐냐면, 저자 중에 우석훈 이름이 들어간 게 네 권이라는 것.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의 개정판을 사는데, 원작도 가지고 있다는 것. '88만원 세대'는 처음 일독하고서 시리즈인지 모르고 회사에 기증했다가 다시 산다. 시리즈 중에 한 권이 비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근데 알라딘이 왜 또 사냐고 물어보더라. 또 마음이 아팠다.
오픈마루의 위키 기반 웹 노트, 스프링노트가 어제 일자로 개편을 완료했다. 사실 개편에 대한 건 아니고, 이 참에 다뤄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글 쓰는 도구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또는 생각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들을 수 있는 가장 기쁜, 궁극적인 소리는 아마도 '글을 쓰게 하는 도구'로 불리는 것 아닐까. '글자를 찍어 남길 수 있는 것'으로 불리는 대신 말이다.
최근에 내가 그렇게 부른 것은 --- 미투데이에 몇 번 쓴 일이 있는데 --- q10이라는 응용이었다. q10은 화면 전체를 검게 가득 채우고 글을 쓰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하는, 이를테면 독재자나 다름없다.
q10을 띄우면 눈에 보이는, 마우스로 콕 찍을 수 있는 메뉴도 없고, 그래서 단축키를 모르면 나갈 수도 없다. 그야말로 감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진해서라도 들어가고 싶은 감옥이다. 어떤 게으름뱅이가 글을 쓸 때는 종종 감옥이 필요했다. 방금도 들어간다고 표현했는데, 돌이켜보니, q10에 들어간다거나 나온다거나 하는 말을 몇 번 더 썼더라. 들어가고 나오다니, 어디 요즘과 같은 멀티 태스킹 시대에 가당키나 한 소린가?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니다. (편지 내용이 궁금하면 도메인을 빼고 읽으세요.) 요즘 우리들에게는 뭔가에 집중한다는 일이 예전처럼 쉽지 않다. 할 수만 있다면 빌어먹을 MS와 윈도우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싶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죄가 없다. 있나?)
요전에는 하도 기특하여, q10이 어디 하늘에서 툭 튀어 나왔나 보았더니, q10과 비슷한 Dark Room이란 놈이 아니나 다를까 발견되었다. Dark Room은 Write Room의 카피라고 하는데, OS X 버전이다. 리눅스 버전을 찾는 사람을 위해 대신 찾아 보았는데, Pyroom이라는 게 있다. 여기서 끝날까? 아니다. 자매품으로 DarkCopy(어디서 나온 이름인지 알겠다. -.-), JDarkRoom(자바로 만든 Dark Room 카피?), MS 워드로 Write Room 흉내내기, WestEdit가 있다. 정 안 되면, 리눅스 런레벨 3 이하에서(그림이 하나도 없는 까만 콘솔 화면을 말한다) Vim 같은 콘솔 에디터를 쓰라고도 한다. 어차피 똑같다고. 그러고 보니 그렇다. 멀리 돌아왔지만 아무래도 원본은 Write Room인 것 같으니 이들을 Write Room류라고 불러야겠다.
스프링노트 개편으로부터 이런 얘기까지 하게 된 계기가 있다. 그제, 오픈마루에서 일하는 멋진 개발자 나이누옹이 말씀하시길, 스프링노트 새로운 버전을 만지작 거리다가 갑자기 글이 쓰고 싶은 충동이 들어 글을 하나 썼다 한다. 그 사실을 모른채 인상깊게 읽었던 액티브 서포트 - b 어쩌구 하는 글이 바로 그것이다. 뭘 알고 인상이 깊었던 것은 아니나 아무튼 그랬으니.
옛날부터 어른들이 말하듯이 도구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고,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 법이지만, 옛날이라고 붓의 로망이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 글은 나이누옹과의 대화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 씌였으며, 이 글은 미투데이에 남긴 로그를 기반으로 거저 먹었으며, 이 글은 스프링노트로 작성되지는 않았음.
어느새 또 다시 연휴가 되었고, 내 방 PC 앞에 앉자 뭔가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한편 아무 것도 못할 거라는 확신도 든다. 아마 후자가 맞을 거다. 또는 둘 다 옳다. 나는 아마 많은 걸 할 수 있겠지만, 아무 것도 못할 것이다. 그게 게으름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