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게으름뱅이
2008/09/13   게으름뱅이 패러독스 [2]
2007/10/05   이건 바로 나 [14]
2007/07/11   노력의 인플레이션 [1]
게으름뱅이 패러독스
어느새 또 다시 연휴가 되었고, 내 방 PC 앞에 앉자 뭔가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한편 아무 것도 못할 거라는 확신도 든다. 아마 후자가 맞을 거다. 또는 둘 다 옳다. 나는 아마 많은 걸 할 수 있겠지만, 아무 것도 못할 것이다. 그게 게으름뱅이니까.
by 어이 | 2008/09/13 22:54 | 해이 | 트랙백 | 덧글(2)
이건 바로 나

사이트를 뒤지다가 '어. 어? 어! 어어어?' 하고, 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팬더에게서 나를 보다.

끼잉!

by 어이 | 2007/10/05 16:47 | 헤이 | 트랙백 | 핑백(1) | 덧글(14)
노력의 인플레이션

요즘 미디어들은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건 어떤 종류의 인플레이션일까? 예전에 사랑의 인플레이션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여기서 요약하자면, 한 사람이 사랑에 미쳐서 가진 것을 다 버리고, 그러니까 사회적인 관계를 포기하고, 자신과 미래를 위해 투자하던 것을 버리고, 인격적인 의심을 받거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는 것까지도 감수할 수 있다면, 더 많이 미친 사람일 수록 결국 사랑의 경쟁에서 승리하리라는 그런 얘기였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언제나 승리한다면 그들은 또 반드시 패배하기도 할 거라는 것이다. 평생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살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당신은 가진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사랑은 이런 인플레이션의 가장 흔한 예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일에서도 그렇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좋아한다. 가진 모든 것을 투자하라, 성공할 때까지 하라, 안 되면 되게 하라, 전력투구, 잇쇼 겐메이, 전심전력, 등등…. 내 의문은 과연 평생 그렇게 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결국 낙오할 것이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한 누군가는 아직 지치기 전이므로 그렇게 할 수 있고, 당신은 경쟁에서 지게 된다!

인플레이션은 공멸의 지름길이다. 공멸이란 것은 시기적으로야 차이가 있겠지만 언젠가는 모두가 패배자가 된다는 얘기다. 요즘 소니 침몰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마침 여기서 소개하기 좋은 내용이 튀어 나왔다. 저자는 소니의 바이오(VAIO) 팀에 있던 기획자다. 바이오 팀은 어떻게 궤멸했을까? 책은 그 원인을 기술을 천시하고 리스크를 두려워하게 된 조직 문화가 결국 모든 것을 망쳐 놓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 하나 원인으로 든 것이 있다. 좀 옮겨보자.

  거실용 PC가 대히트를 기록하자 매니아층에게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확실히 판단미스다. 왜 그처럼 안이한 방침이 내려졌는가? 이는 스탭들의 피로가 한계에 다다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잠깐 바이오 스탭들의 다망한 업무를 소개해본다.

다음 단락부터 그는 열정적이고 노련한 바이오 개발자들이 어떻게 자신을 불태워 그 모든 업적을 이루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실 업적들의 소개나 자랑은 이미 끝났다. 이 장에서는 그 뒤에 얼마나 열심히 일한 스탭들이 있었는지를 나열하는 중이다. 그런데, (모든 문제는 이 그런데에서 시작하더라.)

  그렇지만 우리도 인간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바이오가 성장하고 있을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라인업에 구멍이 생기면 안된다. 너무나 바쁜 나머지 현장에는 이상한 권태기가 시작되었다. 끝없이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가 된 듯한 기분이 든 것이다. 이런 살인적인 스케줄 하에서는 아무리 우수하고 의욕이 넘치는 사람이라도 현상유지에 급급해진다. '이 기능을 신모델에 넣으면 좋겠지만 납기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포기해야겠다', '여기서 조금만 더 하면 신기능을 하나 더 집어넣을 수 있지만 검증하는 데 시간도 걸리고 그만둬야겠다'…. 이때 '잘 팔리기만 하면 되지 뭐, 매니악한 물건 만드느라 고생 안 해도 돼'라는 풍조는 가장 쓰기 쉬운 변명이다. 누군가가 앞장서서 매니악한 물건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부터 고생해서 제품을 만드는 열정이 사라지고 안 좋은 전략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 하나의 귀결이 '매니악한 물건은 만들지 말라'고 하는 방침의 수용이었다.

이 단락에는 확실하게 나와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기조를 볼 때 안이한 방침을 내린 건 바이오 스탭들이 아니라 매니저라 불리는 위치의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왜 스탭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했을까? 문제는 그들이 옳지 않은 방침을 수용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사람은 지친다. 조직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조직이 피로하면 결국 멈추게 된다.

모두가 미쳐야 하는 인플레이션 속에서는 지치면 죽는다. 과연 거기에 행복이 있을까? 사회가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 환경에서는 이 악순환을 깨뜨리는 것이 어려워보인다. 당신이 여유를 갖기 위해 멈춘다면, 진다. 지쳐도 진다. 죽을 때까지 달려야 할 것 같다. 당신은 인플레이션의 순환 속으로 유도되었고, 그런 당신도 다른 누군가를 유도한다. 모든 걸 일순간에 멈추고 모두가 페어 플레이 정신으로 적당히 일한다면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그 중 한 명이라도 약속을 깨뜨리면 그 사람이 모든 걸 갖는다. 죄수의 딜레마가 여기에도 등장한다. 그때 우리의 선택은 또 '모두가 덜 행복해지는 세상'일까?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by 어이 | 2007/07/11 00:44 | 해이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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